2021년 02월 27일
스타워즈와 프라모델
오리지널 스타워즈와 프라모델에 둘다 관심있으신 팬(이라 쓰고 너드, 혹은 덕후라 읽히는) 분들은 영화사상 최대 프랜차이즈와 우리의 이 쉽게 오해받는 고상한 예술적 취미활동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걸 잘 아실겁니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하드웨어들의 디자인언어의 사전이 있다면 그 어휘의 많은 것들이 프라모델 부품들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 스타워즈 디자인 미학을 결정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알수록 일종의 묘한 자부심이 들기도 합니다.
Kitbashing 키트잔치(?), 키트 덕지덕지 붙이기
이 매력적인 관계의 시작은 스타워즈의 선배라 할수 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였습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우주선 디스커버리호는 이후 SF영상물 미니어쳐 제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키트배싱 방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상업용 모형키트의 부품을 떼어다 디테일업에 사용하는 기법은 기존에도 존재했지만 우주선의 거대감과 현실감을 위해 전면적으로 사용된 것으로는 사실상 최초라고 할수 있습니다. 스타워즈도 마찬가지이지만,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많은 우주선들은 전체적으로 매우 단순한 형태에 복잡한 표면 디테일을 통해 스케일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자잘한 표면 디테일은 이후 ILM에서는 그리블(greeble, greeblie)이라는 용어로 정착됩니다.
2001의 디자인 방향은 스타워즈에서도 채용되었는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철학적 심리물에 가까웠던 2001에 비해 낯선 환경에서 선과 악의 대립을 보여줘야하는 스타워즈는 등장 하드웨어(우주선, 무기, 로봇 등을 총칭해서)의 피아식별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조지 루카스 역시 그 점을 매우 중요시했는데, 독일군이든 연합군이든 항공역학의 조건내에서 만들어진 군용기들의 실루엣이 엇비슷할수 밖에 없는 한계와 달리 가공의 우주선이나 전투기들은 얼마든지 독특한 형태로 만들수 있다는 잇점을 최대한 활용한 덕에 오늘날도 SF영화의 아이콘이 된 X윙이나 타이파이터 같은 명 디자인의 탄생이 가능했다 하겠습니다. X나 H의 실루엣이 정해지고 전체 윤곽이 조 존스턴이나 랄프 매쿼리등의 디자이너의 손에서 다듬어진후, 이 디자인들의 최종 완성단계는 모형소의 모델러들 손에서 이뤄진 일종의 '통제된 카오스'라고 할수 있습니다.
조 존스턴의 밀레니엄팰콘 (재)디자인 초안
이후에 자세히 다룰수 있기를 바라지만 밀레니엄 팰콘은 사실 애초에 우리가 잘 아는 디자인이 아니었습니다. 스타디스트로이어에 쫓기던 레아 공주의 블로케이드 러너가 원래 한솔로의 '해적선'역할로 제작되었지만, 타 작품 디자인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비행접시에 가까운 '날으는 햄버거' 팰콘이 급히 재디자인되었습니다.
영화의 주역 우주선이라 할 밀레니엄 팰콘의 재디자인은 큰 문제였습니다. 영화 촬영세트 제작이 병행되어야 했으므로 후반작업까지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ILM팀은 디자인에 며칠, 미니어쳐 제작을 2주정도에 해내야하는 살인적 스케줄을 통해 영화사상 가장 사랑받는 우주선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렇게 급히 제작되어야했던 밀레니엄 팰콘 미니어쳐의 제작중 모습을 보면 스케치대로 중간이 육각기둥으로 갈라진 원반두개를 밀착하고 앞에 주둥이를 단 형상대로 만들어짐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표면 디테일을 위한 그리블리 작업을 위해 수많은 키트들이 제물로 받쳐졌습니다. 아주 옛날 머나먼 은하계에서 가장 빠른 고철 우주선인 팰콘은 사실 2차대전 전차, 페라리 레이스카 엔진, 새턴V호 로켓 부품등 20세기 지구에서만 구할수 있는 부품들을 덕지덕지 붙인 초현실적 우주선이었던 것이죠.
이 디자인 과정이 통제된 카오스라 불릴수 있는 이유는 그리블리를 붙이는 작업은 모델러들의 임의대로였기 때문입니다. 디자인 감독이 일일이 지정할 여력도 시간도 없었기에 전체적인 균형을 깨지는 않는 한도내에서 마음껏 디테일업을 하는것이죠. 그리고 각 모델러의 스타일이나 개성이 너무 드러나는것을 막기위해 모델러들은 자리를 바꿔가며 작업했다고 합니다. ILM 모형소의 수장이었던 론 피터슨의 말에 따르면 킷배싱은 분명 2001의 영향을 받았으나 스타워즈의 미니어쳐들은 그것을 한단계 더 끌어 올렸습니다. 다양한 부품들이 단순 나열되던 2001 스타일과 달리 스타워즈의 표면 디테일은 파이프등으로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개연성을 좀더 부과한 스타일로 발전되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 모델러 동호회인 www.therpf.com에는 당시 미니어쳐 제작에 쓰였던 부품들을 하나하나 역추적해서 찾아내는 미친넘 아니 열정적 너드들이 계십니다. 덕중의 덕은 뭐다?! https://www.therpf.com/forums/threads/large-scale-millennium-falcon-kit-ids-new-maps-at-start-of-thread.104116/ 2010년부터 10년동안 아직도 부품 역추적중인 열정의 현장을 확인하실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베이나 발품을 팔아 실제 그 당시 키트들을 구해서 70년대 ILM의 모형소가 만들었던 방식 그대로 미니어쳐를 재현하는 용자들도 계시죠. 영화속 우주선이 아닌 촬영용 미니어쳐를 재현한 것을 스튜디오 모델이나 스튜디오 레플리카라고 부르는데, 고전 영화의 각종 유명 미니어쳐 스튜디오 모델을 만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를 위한 자료조사도 집단 지성을 통해 저렇게 이뤄지는 것이죠. 놀랍다 못해 숙연해질 지경인 저런 열정은, 다시한번 스타워즈와 프라모델간의 혈연적 관계를 재확인시켜주는 결정적 광경이라 하겠습니다. 디지털 모델이나 애니메이션과 달리 모형취미가가 영화속 오브젝트를 저렇게 충실히 재현해보는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스타워즈와 프라모델의 두 우주가 이렇게 이어져있는 덕분이기도 하겠죠.
매트페인팅 글에서도 몇분이 말씀하셨듯 매끈한 요즘 디지털 특수효과보다 어딘가 더 마음이 가는 아날로그 특수효과의 매력은, 단순히 어릴때 봤던 추억보정의 힘 정도가 아니라 프라모델 팬들에겐 내가 좋아하는 이 취미가 저 상상속 우주를 구성하는 일종의 원소와 같다는 강한 동질감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타워즈와 프라모델의 관계에 관한 얘깃거리를 더 찾게 되면 앞으로 틈날때 간간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by | 2021/02/27 06:14 | 모형사진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